Tarot DE Marseille

 


점성학의 역사

점성학의 발원지는 지금부터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수메리아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고대부터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하여 별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해 왔다. 점성학의 아버지는 BC 2세기경의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 천문학서 [알마게스트 Almagest]의 저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동시에 수학자였다. 그 시대의 점성학은 정치, 문화,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의 길흉, 전쟁, 여행, 혼사 등에 미래를 점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성학을 지칭하는 'Astrology'는 희랍어로 별들을 뜻하는 Astro와 이야기, 대화를 뜻하는 Logia의 합성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반면 천문학을 뜻하는 Astronomy는 별들이라는 의미의 접두어 ASTRO- 와 학문, 논술을 의미하는 접미어 -NOME이 결합 된 단어이다. 17세기까지 천문학과 점성학은 모든 고등 교육기관의 필수교육 과정으로 교수되었다.

수많은 군주와 제왕들이 점성학을 중시했던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유행하던 점성학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천체에 떠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통해 운명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는것인가 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아퀴나스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한 바 있었지만 이후 로마 교황청에서는 점성학을 종교재판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등 대단히 경직된 입장을 취한 사실이 있다. 유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이런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될 비운에 처하였다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프랑스의 여왕 까트린 드 메디치(1519-1589)의 보호를 받아 생명을 부지한 얘기는 유명하다.

노스트라다무스(1503-1555)는 유명한 예언서 [Centuries(100 詩)]를 후세에 남겼다. 놀라운 사실은 1781년 영국의 W. Herschel이 발견한 천왕성, 1846년에 프랑스 Le Verrier가 발견한 해왕성, 1930년 Tombaugh & Lowell에 의하여 발견된 명왕성에 관한 기술이 [Centuries]에 이미 예언,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말엽까지 점성학은 태양계의 별로는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7개의 항성을 중심으로한 연구에 그쳤었다. 그렇다면 노스트라다무스가 300-400여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위에서 말한 3대 별의 발견을 예견하였다는 것은 분명 획기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781년 천왕성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7개의 항성을 중심으로 점성학이 발달되었다. 천왕성이 발견된 이후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민족주의 대두, 산업혁명 등 역사적인 대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다. 정확하게 천왕성이 관장하는 혁명, 독립, 신기술,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산업혁명으로 부를 쌓기 시작한 서구 열강이 식민지 경영에 혈안이 되었던 서세동진의 시대, 식민지 경영시대, 해양시대를 예고하는 19세기 중반의 1846년 해왕성이 발견되고, 경제공항, 원자탄 투하를 불러온 세계 제2차 대전을 예고한 1930년의 명왕성 발견과 때를 같이하여 12궁 10대 항성의 현대 점성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과학자, 문호들 중에는 점성학 애호가들이 많았다.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튼, 괴테, 빅톨 위고, 오노레 발작, 아인슈타인 등등. 점성학을 중시하는 경향은 현대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정치가, 예술가, 사업가, 학자들이 자기완성의 지침 도구로서 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많이 애용하고 있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의 주요 일정 준비에도 점성학자의 참여 또는 자문이 확실히 있으리라는 추정도 단순한 소문만은 아닌 듯 하다.

최근 점성학의 통계학적 접근 방법에 대한 검증이 유명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에서 시행된 바 있다. 수십만건의 인적사항 사실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점성학의 접근법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한다. 점성학이 전통과 뿌리가 확실한 인문과학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인문과학인 점성학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점성학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진로를 예측할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우주(자연법칙=신)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인용해 볼 수 있다. 점성학을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한 지침서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점성학은 단순히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점술 도구는 물론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통해 그 근거와 학문적 도덕성이 실증된 학문이다. 인간과 자연현상을 결부시켜 이해하기 위해 영감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 부분에 과학성 여부와 관련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영감과 상상력은 자의적인 면을 간과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영감과 상상력은 엄격한 공식과 법칙을 통해 실증할 수 없는, 과학성이라는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성은 인간 창의력의 산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창의성을 과학의 범주 안에 강제로 가둘 수 있을까?

그러나 어찌하랴! 과학성에 대한 반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프랑스의 석학 데카르트의 궤변과 맥을 함께 하는 한치 앞을 못 보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 시대에 인간의 무지로 덮여있던 진실이 시간이 흘러 진실로 증명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카톨릭의 도그마에 굴복하여 종교재판에서 '지구는 네모'라고 인정하고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고 한 갈릴레오의 한탄을 상기해 보면 과학, 비과학의 논란은 이미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리라.

점성학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점성학을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Destin/Destiny)은 숙명(Fatalit /Fatality)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삶이라는 여정이 있다. 그것은 숙명이 아닌 하나의 길일뿐이다. 그 인생 행로에 자연이라는 환경이 있다. 천체 조화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빚어낸다.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은 자신의 길을, 사는 방법을 선택한다. 적응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그리며. 판단의 주체도 생동의 주체도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대결하고 적응하며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여야 하는가하는 점이다. 점성이 갖는 의미는 바로 자신이 행복한 삶을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해야 하는가를 찾는 사람에게 지혜의 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인간 희극] 작가 오노레 발작은 이렇게 말했다.

        "점성학은 광대무변한 인간의 위대한 지성을 지배하는 학문이다."

        원자 물리학의 거장 아인슈타인의 지적에는 석학다운 지혜로움이 담겨 있다.

"점성학은 그 자체로 계몽적인 학문이다. 나는 점성학을 통해 배운바가 많았다. 지   구 물리학은 태양계의 별들이 지구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정립하는 학문이다. 지구 물리학의 지식체계를 뒷밭침 해 주고 강화해 주는 학문이 점성학이다. 따라서 점성학은 인간에게 원기를 주는 영약과 같은 학문이다".

결론적으로 점성학은 우리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하는 지혜의 학문이다. 인간의 심리적 리듬을 잘 연구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점성학은 우리가 언제 복권에 당첨되는 횡재를 할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 행로의 흐름을 예고해 줄 수는 있다. 그 흐름을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영위함은 행동의 주체인 우리의 몫이자 선택이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김 매주고 물주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종자 씨앗을 잘 보관하여 내년 농사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하는 평범하지만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지혜를 제공하는 학문이다.